본문 바로가기

Rest(휴식)/News(뉴스)

안철수 캠프, '친노 왕따·호남 왕따' 방어자 돼야

728x90

안철수가 대선 출마하면서 요즘 새롭게 뜨고 있는 뉴스입니다!


지난 번 글  '안철수캠프, '노무현 왕따'현상'이해해야 "에서 노무현과 친노에 대한 부당한 평가는 일종의 왕따현상으로서 안철수캠프가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안-문 단일화에서 의도치 않은 실수를 할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왕따는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가 아니라 가해자에 동조하는 조력자, 가해자보다 한술 더 뜨는 강화자, 방관자가 모두 갖추어져야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임을 지적한 바 있다. 이번 글에서는 왕따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

고성국은 '친박 논객'이라고 부르지 않으면서... 


내겐 늘 '대표적인 친노논객'이란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박사모'로부터 감사장을 받은 고성국 박사를 누구도 대표적인 '친박논객'이라 부르지 않는다. 안철수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강준만, 김민전 교수를 '친안논객'이라 부르지도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 3주기를 끝으로 나는 노무현재단의 임원직을 모두 사임했다. 정치할 생각도 없고 특정 후보를 지지한 적도 없다. 다만 속 마음을 밝히자면 지난 10년의 세월이 내게는 너무 힘들었기에 문재인이 아닌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친노 왕따'와 역차별의 굴레에서 해방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데 최근 몇몇 방송에서 나를 대선 때까지 고정패널로 추진하려던 계획이 윗선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구체적 이유를 말하는 곳도 있고 얼버무리는 곳도 있지만 답은 뻔하다. '친노'라서 안된다는 것이다. 보수 쪽만 그런 게 아니라 진보 쪽도 마찬가지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나를 청와대로 부른 건 내가 그를 지지했거나 개인적 인연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를 때론 비판하고 때론 칭찬했던 나의 정치 분석이 결과적으로 국민다수의 생각을 대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노무현이 모든 걸 잘했다고 주장한 적도 없고, 청와대에서는 직설적으로 대통령에게 맞섰기에 노 대통령이 가장 버거워했고, 불편해하던 참모였다.

당선자 시절 노 대통령과 대북특검에 대해 얼마나 격렬하게 싸웠던지 분위기가 살벌하기도 했다. 그 후 TV토론에 나와서 대북특검을 반대하자 어떤 한 사람은 내 홈피에 찾아와 "노무현 정부에서 한 자리 하기 위해 곡학아세를 한다"며 얼마나 공격을 해댔는지 모른다. 한 자리 하기 위해 인수위 참여요청을 두 번이나 거절하고 김대중 정부를 옹호한다는 게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거울로 남을 비쳐보는 것 같다. 어차피 공인이 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 영향력을 갖는 대신 대중의 오해를 받고 욕 먹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기에 그런 비난은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대다수 논평가들의 특정후보 지지성향이 드러난 상황에서 왜 유독 '친노'라서 배제되어야 하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 세상에 어떤 논평도 중립적이지 않다. 다만 그 논평이 객관적 근거가 있는지, 예측이 어느 정도 맞았는지에 따라 대중이 논평의 질을 판단할 뿐이다. 나는 정치를 객관적으로 예측할 뿐이지 희망사항을 논평으로 포장해서 말한 적도 없다.

왕따의 기원은 호남차별



▲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9월 28일 오전 전남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물론 내가 이렇게 왕따를 당하는 데에는 연원이 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나를 호남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다. 호남과 관련된 문제에 번번이 내가 호남의 입장에 섰기 때문일 것이다. 1995년 한국정치학회에서 처음으로 DJP지역연대가 성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정당하다는 논문을 발표했기에 많은 이들도 내가 호남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내가 늘 호남 입장을 두둔했던 건 우리사회에 호남 왕따현상이 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철이 들 때부터 우리사회의 호남차별이 매우 야만적인 행위라고 생각해왔다. 판단이 어려울 땐 약자의 편에 서는 게 정의라고 생각했기에 누가 호남차별적 발언을 하면 늘 정색을 하며 싸웠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유독 호남 절친이 많다. 내 친구들을 통해 나는 호남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악의적이고 근거 없는 것인지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은 왜 호남왕따에 맞서지 않고 방관했을까. 지금은 지역차별이 많이 사라졌지만 이십 여년전 충청도에 살 던 한 호남출신 친구는 충청도민의 보이지 않는 호남차별이 경상도 사람들보다 더 심하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영남의 패권주의 하에서 호남에 동조했다 같이 왕따 당할 것이 두려워 호남을 더 차별하는 '강화자'의 심리 때문 아니었을까. 

왕따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왕따를 당하는 사람이 자신이 지금 얼마나 힘든지 그 고통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고백이 가해자를 설득하지는 못한다. 가해자는 보통 공감능력이 떨어져서 가해자가 되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고백이 왕따 극복에 도움이 되는 건 방관자들을 설득해 방어자가 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일단 첫 방어자가 나오면 이에 동조하는 방어자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피해자가 다수에 속하게 돼 소수의 위치를 벗어나게 된다. 그러면 피해자는 더 이상 왕따를 당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들 가해자의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첫 방어자의 용기는 매우 중요하다.

역으로 가해자의 입장에서는 첫 방어자를 제압하는 게 왕따를 지속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가해자는 감히 왕따의 피해자를 방어하려 드는 최초의 방어자에게 피해자보다도 더 처절하게 응징을 가한다. 그래야 감히 너도 나도 덩달아 방어자가 되는 걸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수구기득권층으로부터 왕따가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그가 호남왕따를 방어하고도 최초로 성공한 정치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무현은 영남에서 수없이 떨어지면서 민주당 간판을 떼지 않았다. 그가 민주당 간판으로 영남에서 당선되면 더 이상 호남이 소수집단이 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 때문일 것이다.

그가 지역주의 극복을 일생의 과업으로 생각한 이유는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의 문제는 정당으로 귀결되며 그 뿌리엔 지역주의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3당합당은 호남왕따를 합법적으로 영속화시킨 엄청난 폭력이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자유로운 정당 간의 경쟁인데 특정지역에서 경쟁이 실종되니 정치인이 국민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정치가 국민의 삶과 무관하게 된 데에는 지역정당의 책임이 매우 크다. 

하지만 호남인 모두가 피해자였던 건 아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기엔 소수당이었지만 국회의원을 하기엔 그보다 좋은 보호막이 없었다. 호남에도 지역주의 구도에 의해 이익을 보는 기득권집단이 생긴 것이다. 이들에겐 노무현도 눈에 가시일 수 있다.

노무현이 동네북이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이념적으로 실용주의 중도노선을 걸으면서 좌우의 협공을 당한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대학도 못나온 비주류 대통령을 우리사회 주류는 물론이고 좌파 엘리트들까지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 진정성 리더십에서 진정성은 상대적이라는 이론이 있다. 즉, 진정성 리더십은 리더의 진심을 팔로워가 이해하고 존경할 때 리더십 효과가 나타나는데 리더의 신분이 비주류일 때에는 팔로워들이 리더를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현상의 이면에는 그가 강남좌파를 상징하는 주류 중의 주류라는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방어자를 더 처절하게 응징하는 이유

만일 노무현이 자신의 출신지역에 기반을 둔 보수정당으로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도 극적인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보수들의 미움을 사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호남 왕따를 보호한 방어자였기 때문이다. 영남의 패권을 갈라서 그 일부를 호남에 갖다 붙쳐 새로운 다수를 만들려는 노무현을 응징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방어자가 나타날 것을 두려워한 때문이다. 영남기득권은 다수와 소수의 관계가 뒤바뀌면서 자신들이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을 것이다.

여기에 열린우리당 정치인들까지 노무현 왕따에 합세를 했다. 영남에 심하게 구애를 하는 노 대통령이 감정적으로 싫었을 수도 있고 그의 투명한 정치 개혁과 지역주의 혁파 노력이 호남기득권에게는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정치를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버티던 내가 청와대에 합류하게 된 건 노무현이 호남에 이어 새로운 왕따가 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실패하면 호남 왕따는 지속될 것이다. 제2, 제3의 방어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난 정치를 하지도 않을 것이고 돌아갈 안정된 직장이 있으니 밖에선 노무현의 방어자가 되어 싸웠고 안에선 호남의 방어자 역할을 했다. 나에게 집중된 조동문의 처절한 응징도 보수언론에서 잘 나가던 내가 감히 왕따 노무현의 방어자를 자처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또한 영남의 일부를 민주당에 갖다 붙이려는 제2의 방어자가 되었다. 그런데 왜 가장 감사해야 할 호남 유권자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을 위해 헌신하는 문재인보다 민주당에 들어오지도 않는 안철수를 더 지지했을까? 당선가능성에 대한 고려도 있었겠지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오해도 한몫 했으리라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영남의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 영남 인재에게 많은 기회를 준 것이 사실이다.  인사문제로 내가 TV토론을 나갈 때에도 그런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말라고 당부한 적이 있다. 다만 그 목적이 영남지역주의를 깨기 위한 것이니 호남 유권자들도 이해해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투박한 말투와 대북송금 문제가 오해를 불러 일으켰고 이로 인해 호남유권자들이 상처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언젠가 당시의 상황과 의도를 세세히 전함으로써 오해를 풀 기회가 있으리라 믿는다. 다만 노 대통령이나 나나 왕따 피해자를 보호하는 방어자로서의 용기를 발휘하다 수구기득권의 핍박을 받았다는 것만큼은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안-문 캠프, 서로에게 방어자 되어줘야



▲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일 오전 서울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을 방문, 이희호씨를 예방한 뒤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문재인 후보는 나름의 방법으로 친노 왕따현상을 극복하고 있다. 친노가 소수로 모여 있으면 지속적으로 왕따를 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캠프에서 친노를 배제하고 탕평책을 통해 용광로 선대위를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리더십스타일이나 성격도 다르기에 그의 이런 노력이 전해져 호남 민심도 돌아서고 있다고 생각된다. 민주당이 안정감을 주면서 민주당 정당 지지도도 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기득권세력은 교묘하게 친노왕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프레임에 진보진영의 언론이나 정치인까지 따라가는 우를 다시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안철수 후보는 우리 사회 주류로 또 성공신화를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왕따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기에 문재인 후보가 왕따를 당한다면 기꺼이 방어자가 되어 주리라 믿는다. 마찬가지로 안철수 후보가 부당한 공격을 받는다면 지난 번 송호창 의원이 금태섭 변호사의 기자회견에 동석했듯이 민주당이 기꺼이 방어자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부당한 왕따에 방어자가 되어주라는 것이지 진영논리로 잘못을 합리화하라는 게 아니다. 다음엔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이 과연 '증오의 정치 종언'이 맞는지에 대해서 쓰겠다.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86937&CMPT_CD=P0000

네이버 뉴스